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진중권-091116

체스
체스의 역사는 예술의 역사를 닮았다.
고전 예술이 주로 구상이라면, 현대예술의 주류는
추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현대 예술은 실물을 닮지 않은 그 추상성 때문에 작품밖의 현실에 대해
아무말도 못할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낱말이 세상을 닮지 않았다고 세계를 기술할 수 없는가?
체스 말이 실물을 닮지 않았다고 체스를 못 두는가?
실물을 닮지 않은 둥글넓적한 중국 장기의 말을 가지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초나라와 한나라 사이의 전쟁을 연출한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현실을 닮지 않은 추상예술도 얼마든지 현실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다.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진중권-091116

주사위
신은 혼돈으로부터 조화를 창조했다.
우주를 '조화'로 느꼈던 시대에 예술가들은 '또 다른 신'이 되어
제 피조물인 작품속에 코스모스를 창조하려했다.

하지만 아젠베르크 이후를 사는 우리에게 우주는 무엇보다도
우연이 재배하는 혼돈의 세계다.
이런시대에는 예술도 주사위 놀이를 닮아간다.

그 때문일까?
다다이스트 마스셀뒤샹은 1미터 길이의 실 세개를 떨어뜨려
그대로 작품을 삼았다.
초현실주의자 장 아르프는 글자가 적힌 종이를 찢어서 떨어뜨려
얻어지는 낱말의 우연한 조합으로 시를 지었다.
전위예술가 존케이지는 샘플을 무작위로 배열해 작곡을 했다.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모차르트는 케이지보다 200년 앞서 이미 주사위 두개로
작곡을 하는 실험을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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